32년전 국가안전기획부의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수사로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모녀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인정받았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재판장 마용주 부장판사)는 지난 198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김모씨(55·여)와 그의 모친 고 황모씨(여)를 대신해 가족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압수물들은 피해자들이 국가안전기회부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체포·구금돼 있던 상황에서 이들의 진술에 기초해 획득된 것으로 보이는 등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영장주의에 위반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면서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제외한 증거들을 놓고 살펴보면 피해자들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재판받을 당시 진술조서는 그대로 믿을 수 없고 그 외 증거들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증명하기 충분치 않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1979년 가정형편이 곤란해지자 포항과 대구, 서울 등지를 돌며 종업원으로 일하다 1983년 모친 황씨의 주선으로 친척 방문용 여권을 발급받아 일본으로 넘어가 종업원 등으로 일하다 1984년 1월 일시 귀국했다.
어머니 황씨도 사업이 실패하자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같이 생활하며 일본을 오가며 일하다 같은해 2월 일시 귀국했다.
그러나 안기부는 그해 3월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조직된 '재일조선인 총연합회'의 사주를 받아 대남적화공작을 위해 귀국한 것이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984년 7월 제주지법은 김씨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황씨에게는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각각 선고했고 그해 말 광주고법이 이들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이들 모녀는 지난 2013년 5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자 법원이 지난해 6월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후 그해 11월 재심결정이 확정되면서 재심이 시작됐다.
재심 재판부는 “김씨와 황씨의 일본에서의 행적은 자세하고 방대하게 서술됐음에도 수사기관에 연행당하기 직전 기록은 단순하거나 아무런 기재가 없는 점, 안기부에서 작성된 이들의 진술서가 불과 나흘이라는 기간에 작성됐다고 믿기 힘들만큼 구체적이고 방대한 점, 김씨 등이 연행된 후 언제 풀려나 귀가했는지 알수 있는 자료가 없고 구속영장이 집행된 장소가 안기부 제주분실인데다가 집행일도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한 날이 아닌 점에 비춰 연행된 이후 귀가하지 못하고 수사기관에 유치돼 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이들이 불법적으로 구금돼 자백한 것은 자백 증거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시했다.
또 “자백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다른 증거들로는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며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