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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사람이 좋다' 송대관, 나이 일흔 다섯, 오랜 무명생활 '해뜰날'로 스타덤..아내 이정심 작사한 '유행가'도 히트!

  • 전희연 기자 jejutwn@daum.net​
  • 등록 2020.03.10 16:50:08

[제주교통복지신문=전희연 기자]가수 송대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10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가수 송대관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트로트 열풍에도 원조가 있다. 1976년 가요대상 3관왕에 오르며 가수왕에 등극하며 송대관은 트로트계의 대형스타가 됐다. 트로트 침체기를 겪으면서 미국으로 이민을 선택한 송대관. 하지만 한국이 그립고, 트로트가 그리웠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정 때문에'를 부르며 재기에 성공한다. 

그 후 송대관은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를 거치면서 국민가수가 됐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사 능력도 인정받아온 송대관. 그가 본명 대신 '초원'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의 대표곡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스무 살의 송대관은 차표 한 장을 들고 고향을 떠나 마침내 가수왕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길에는 유독 기복이 많았다. 송대관은 한때 부동산 사기사건에 엮이며 잠시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무죄판결을 받고 방송 무대에 복귀했지만 이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송대관의 어머니 국갑술 씨는 아들이 성공한 후에도 노점에서 재봉틀로 만든 옷을 팔면서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셨다. 어머니가 모셔진 봉안당을 찾은 송대관이 애끓는 사모곡을 부르며 어머니에게 전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1946년생으로 올해 나이 일흔 다섯살인 송대관은 데뷔 54년 차 가수다.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평생의 이야기가 담긴 신곡을 준비하고 있다. 체력은 젊은 날의 자신을 따라갈 수 없지만 노장 송대관의 정신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강인하다. 

지난해 수술 전부터 정성들여 녹음하고 있는 신곡을 마무리하기 위해 찾은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장충 녹음실은 가수 송대관의 노래 인생이 담긴 현장이다. 신곡을 최종 녹음하는 날, 대선배 송대관을 후배 가수들이 찾아왔다. 

송대관은 트로트 후배 가수를 발굴하고 어려운 형편의 동료를 지원하는 데 남몰래 힘써왔다. 송대관이 직접 발굴하고 데뷔를 도운 가수 김양과의 특별한 인연이 소개된다.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후에도 여전히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후배들은 큰 가르침을 얻는데.

무대에서 살다 영원히 무대에서 쓰러지는 가수가 되는 게 바람인 송대관은 다시 한 번 우리들의 마음을 울릴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전라북도 정주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독립운동을 도와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송영근이며 1942년에 사망했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실종되어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1965년에 전주영생고를 졸업한 송대관은 서울로 상경하여 오아시스 레코드의 사장인 손진석을 만나 그의 일을 도우면서 가수 트레이닝을 받게 됐고 1967년에 정통 트로트 《인정많은 아저씨》(초원 작사/ 김성유 작곡)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송대관이 데뷔하던 당시에는 남진과 나훈아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무명으로 전락했다. 

1971년 부르스 느낌이 나는 《세월이 약이겠지요》(송대관 작사/ 신대성 작곡)를 발표했는데 이 곡이 인지도를 얻으며 방송 출연량이 증가했다. 그러다가 1975년 《해뜰날》(송대관 작사/ 신대성 작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송대관이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며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이 곡은 반복적이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가사와 경쾌한 맬로디가 돋보이며 당시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 대세 가수들을 제치며 인기몰이를 하고 1976년 방송국 가요대상 3개를 수상하고 동시에 가수왕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송대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트로트를 부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역할의 중심이 되었던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 체제를 구축했다. 

그 중에 같이 이민 생활을 했던 태진아와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사이로 지내며 그와 함께 명콤비로 불리며 매년 《송대관 & 태진아 라이벌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2002년 58세에 아내 이정심이 작사한 《유행가》(이정심 작사/ 최정환 작곡)를 발표했는데 이 곡은 2000년대 초반에 가장 크게 히트한 송대관의 노래로 화려한 의상, 엇박자 댄스를 선보여 젊은 층들이 즐겨 부르는 트로트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사랑해서 미안해》, 《내 녀자》, 《오래오래》를 부르며 활동해왔다.

제주교통복지신문, JEJUT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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