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꼭 때려야만 학대일까? 소리 없는 학대, ‘방임’

2022.12.29 10:14:08

이수희 서귀포시 여성가족과

서귀포시에서는 2021년 10월부터 아동학대 공공화 사업이 추진되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아동학대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아동학대전담공무원으로서 맡았던 아동학대 사례 중 가장 복잡하고도 어려운 사례를 뽑으라면 단연 ‘방임’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서귀포시는 올해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서 주최하는 「e아동행복지원사업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방임 사례 내용으로 장려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미취학 아동의 방임 의심 신고를 아동학대 사례로 인지하여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부모에 대한 양육 기술 교육 및 위생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연계한 사례였다.

 

단순히 행정이나 복지기관에서 집을 깨끗이 치워준다면 해결 방법은 보다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방임가정의 자립 능력을 높이고 재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들더라도 부모에 대한 교육과 사후관리(모니터링)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빠른 방법보다는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 결과였다.

 

방임은 신체적 학대처럼 폭력적인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리 없는 학대(silent abuse)라고 불린다. 그래서 증거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는 흔히 말하는 ‘쓰레기 집’이 아니라면 방임 혐의에 대해 처분이나 처벌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방임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아이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임 사례로 만났던 아이들은 지저분해진 집이 “괜찮은 곳, 살만한 공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미 아이들에게 그러한 환경이 익숙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어려운 개입이 시작된다. 초등학생이 되면 생활 습관이 조금씩 잡혀가기 때문에 인식 개선이나 위생 교육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망설이게 될 것이다. ‘이게 방임(학대)일까?, 생활 습관의 차이가 아닐까?,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이면 안 된다. 빠른 인지가 아동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아동학대는 누구든지 의심만 있는 경우에도 신고할 수 있다.

 

발달 지연이나 성장장애, 비위생적인 신체 상태, 악취, 잦은 결석,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은 아동이 가정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임의 신호이다. 이는 단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이웃에 대한 관심이고, 아동보호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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