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전주의 특성화고교 졸업반이던 A(17) 양이 전주시 한 저수지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 양은 해당 콜센터에서 가장 감정노동이 심한 보직이라 알려진 해지방어부서에서 현장실습을 진행중이었다. 해지방어부서는 통신사 서비스를 해지하려는 고객들을 안내하는 한편 해지를 보류하도록 권유하는 업무를 담당, 콜센터 내에서도 기피부서로 알려져있다.
지난 2016년 9월부터 현장실습 과정을 밟아온 A 양에 대해 A 양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잘 적응하는 듯했으나, 얼마 전부터는 극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고객에게 욕설을 듣고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A 양의 어머니 또한 "힘들다고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냐고 묻길래 어려워도 참고 이겨내라고 했다"며, "정말 힘들어서 한 하소연을 새겨듣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A 양의 가족들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판단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이통사 관계자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고 있다. A 양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회사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며,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사회복지사 상담에서도 별다른 이상징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3년전 해당 이통사 콜센터의 동일 부서에 근무하던 30대 여성 역시 자살을 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와 같은 회사 측의 설명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13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2월 26일 성명을 통해 "A 양은 콜센터 내에서도 가장 인격적 모독을 많이 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한 것이 확인됐다'며, "지난 2014년에도 같은 사업장, 같은 부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으며, 당시 유서에는 업무상 스트레스 뿐 아니라 시간 외 근무수당 미지급 문제도 담겨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해당 단체는 A 양의 죽음에 업무상 스트레스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진상규명 활동을 진행중이다.

▲ 감정노동 상위 직업군. 제주도내 일자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직군들이다.
단순노동,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가 극심한 콜센터 등 감정노동자들의 잇딴 자살은 다른 지역의 문제만이 아니다.
제주소방안전본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도 지난 3년간 100여명의 서비스업 종사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도내 자살 사망자 504명 중 18%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체 직군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감정노동자들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욕설과 항의, 성희롱 등이 만연한 갑질 문화의 최전선에 그들이 서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다른 지자체에 비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달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지역별 평균 자살률에서는 전국 평균(10만명당 26.2명)보다 다소 낮은 수치(10만명당 24명)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산 등의 지역에서 농어업 인구가 줄어들고 단순 노무직과 서비스업 종사자가 증가한 후 자살률이 급격히 상승한 전례를 비춰볼 때 최근 도시화가 진행중인 제주에서도 자살률은 점점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단순 서비스업에 치중된 일자리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주며 유치한 IT 기업들 역시 몇년 지나지 않아 콜센터 등 단순 업무부서만 제주에 남기고 주요인력을 다시 수도권으로 불러들이는 행태를 벌이고 있다.
제주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 이를 위한 일자리 창출 정책에 있어 감정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부분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재풀 안에서 효율적인 산업구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일자리만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그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또한 관광도시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장의 감정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규정을 따르기 위한 겉치례가 아니라, 도민 복지 차원의 관리 프로그램이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제주 이주를 희망하는 20~40대 젊은 층의 숫자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예비 이주민들이 강원도 등 타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인재 유입을 위한 혜택의 대상을 특정 기업 전체가 아닌, 이들 개별 인재들로 적용하고 홍보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다. 제주로 이주하려는 이들에게 각자의 이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새로운 사업을 토대로 또다시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도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 제주로 이주를 꿈꾸는 각 분야의 인재들에 대한 개별적 홍보와 지원이 필요한 때다.